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소개할 철학자가 한분 있습니다. 다름 아닌 니체입니다. 저는 5년 전 니체의 신은 없다는 책을 읽고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제목과는 달리 기복신앙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신은 없다는 의미를 둔 내용이었고 실질적인 신은 내가 바닥을 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을 당했을 때 처절한 당혹감에 있을 때 겨울에 앙상한 나무가 봄에 새순을 싹트우듯 그렇게 새롭게 살 소망을 주는 신이다라는 의미를 둔 내용이었습니다.
니체의 철학을 재료삼아 떠올리지 않으면 이 책을 읽기 어려운 것처럼 이 책 곳곳에서 니체의 흔적을 발견하곤 합니다. 니체의 철학을 재료 삼아 데미안을 독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 니체의 철학
⊙ 아폴론적 요소 V.S. 디오니소스적 요소
⊙ 힘에의 의지
⊙ 아모르파티
▶첫번째는 아폴론적 세계와 디오니소스적 세계입니다.
- 그리스도신화에서 등장한 이들은 서구사회에서 합리적인 이성과 자유로운 감성을 소개해 왔습니다. 아폴론적 세계는 설명될 수 있는 세계를 가리키며 예를 들어 사회, 도덕, 종교, 진리, 학문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이성의 세계에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 늘 안정과 평화를 주는 사회적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디오니소스적 세계는 이성의 반대편의 세계를 가리키며 자유로운 충동, 감정과 뜨거운 광기의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권위에 저항하며 진리를 의심 과감히 의심하는 철학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니체의 눈에 비치는 당대의 서구사회는 오로지 아폴론적 세계만을 찬양하고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억압하는 사회로 보였습니다.
즉 그가 보기에는 이성만 예찬하고 광기를 억압하는 사회는 열등과 악으로 간주해 왔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양철학이 음과 양을 천지만물의 원리로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정리하면 세계는 아폴론적 세계로만 한정할 게 아니라 디오니소스적 세계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은 이성과 질서 위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충동과 광기의 존재이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두번째로 힘의 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힘에의 의지란 쉽게 말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뜻하는 개념인데, 외부의 도덕이 아닌 , 자신의 도덕을 따르는 주체적 삶을 뜻합니다.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앞서 인간은 이성적일 수도 광기를 드러내는 존재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이성이고 어디서부터 광기인지를 누가 규정하는 것일까요
- 일에 미친사람은 워커홀릭이라고 칭찬하고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은 것일까요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이성과 광기라는 것이 사회가 만들어 낸 절대적인 정의가 아니라 지극히 사회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아폴론적 세계와 디오니소스적 세계는 사회가 구축한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은 그저 사회가 선으로 규정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넘어서 스스로 자기만의 도덕으로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주인의 삶 즉 힘에의 의지를 발휘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세번째는 아모르파티입니다.
- 주로 운명애로 번역됩니다.쉽게 말해 자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단지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란 삶의 모든 고난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능동적 태도를 뜻합니다.
그럼 이제 니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데미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에밀 싱클레어입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 평범한 소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클레어가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할 무렵 그보다 세 살쯤 많아 보이는 덩치 큰 소년 크로머가 나타났습니다.
불량하게 보이는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크로머에게 잘 보이고자 했던 나머지 그만 터무니없는 허풍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크러머는 오히려 그것을 약점 삼아 싱클레어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싱클레어는 갈수록 심해지는 크로머의 괴롭힘에 지쳤습니다.
그런데 얼마뒤 마을에 한 소년이 전학을 옵니다. 그의 이름은 데미안 이었으며 어딘가 신비스러운 기운이 엿보이였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가 왜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냐고 묻습니다. 이에 싱클레어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용기 내여 데미안에게 털어놓았고 그런 뒤 신기하게도 크로머가 더 이상 괴롭히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데미안을 수업시간에도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었습니다. 특히나 그는 수업시간에 배우는 성경 내용들에 자주 의문을 갖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성경 속 가인을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세우기도 하고 또한 죄수가 죽기 전에 회개한 사건을 비겁한 짓이라 비난하며 오히려 죽을 때까지 반성하지 않은 도둑이야말로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라고 칭찬합니다.
이러한 데미안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싱클레어는 감히 성경의 권위에 저항하는 데미안의 불경한 해석에 불편함을 느끼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데미안에게 동하 되기 시작했고 나아가 싱클레어도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는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싱클레어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곧 둘은 헤어집니다. 새로간 학교에서 싱클레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매일밤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방탕한 나날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우연히 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소녀의 이름을 모르는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고 이름 붙이고는 그녀에 대한 순순한 사랑에 힘입어 그간의 방탕한 생활을 완벽하게 정리합니다. 얼마 후 싱클레어가 방 안에서 혼자 베아트리쳉의 얼굴을 그릴 때였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보니 그림속 얼굴은 베아트리체가 아니라 똑 데미안과 닮아 보였습니다. 그림을 물끄러미 살펴보다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낸 데미안의 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편지의 내용은 일전에 싱클레어가 자신의 꿈을 해석해 달라는 부탁에 답신이었으며 내용은 이렇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