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장르 : 장편소설
옮김: 홍은주
1부
한 소녀가 당신 인생에서 흔적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너를 만나러 도시의 둘러싼 벽안 쪽을 따라 걷는다.
형상을 그리며 적으며 걸음수를 기준으로 거리를 잰다. 군데군데 폐가나 다름없는 집들이 눈에 띈다.
비바람에 지붕이 내려앉고 유리창은 깨지고 벽은 허물어져 있다.
집터만 남아있는 곳도 있고 원형이 온전히 보존된 건물도 있고 다 쓰러져 가는 집들도 있고 안이 텅 빈 건 아니라서 가구나 집기도 남아있고 먼지가 두껍게 쌓이고 습기를 먹어 반쯤 썩어 있다.
어느 시점 무언가에 쫓기듯 가재도구도 챙기지 못한 채 황급하게 이도시를 버리고 떠난 흔적, 버려진 무인의 땅을 걷는다.
벽의 현상을 공책에 기록하고 더욱이 벽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도시의 벽을 탐색하는 일은 이주일로 끝이다.
고열이 나서 드러누었다. 잇몸이 욱신거려서 치아가 몽땅 빠져 버릴 것 같다. 꿈속에서 벽이 살아서 움직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벽은 자유자재로 변했다. 변화를 거듭하며 조롱했다.
꿈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으나 이웃에 사는 한 노인이 나를 간호하고 있다.체격은 왜소하고 등은 꼿꼿하다.
움직임은 절도가 있고 걸음걸이는 불규칙한 발소리가 난다.노인의 두상은 동그란 달걀처럼 생겼고 백발이 무성하다. 노인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구에 사는 우리가 달의 한쪽 면밖에 볼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여자의 한쪽 얼굴만 보았노라고!
아주 아름 다운 여인에게 홀딱 반한 이야기 그것은 망령! 어는 정해진 시간에 베란다에 나타나 달빛에 비췬 그녕의 얼굴은 항상 왼쪽만 보았다.
어느 날, 혼신의 힘을 다해 베란다에 뛰쳐나가 그 여자의 오른쪽 얼굴을 보게 되었지만 차마 보면 안 될 것을 보게 되었다.
그건 짓을 절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자네도 조심하게나! 나는 도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어떤 곳인지 , 겨우 열이 내렸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든 사물이 싸늘 하고 황량한 빛이다. 코트흠지 여미고 한차례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 내가 고열로 앓아누운 동안 무슨 이별이 있었을까?
이윽고 네가 왔다. 조금 전까지 느껴진 황량한 냉기가 사라진다. 서고 선반에는 오래된 꿈이 셀 수 없이 많이 늘어서있다. 꿈 읽기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는 조금씩 이 도시의 일부를 받아 들이고 시스템에 동화 된다.
그 여름, 내가 열일곱 네가 열여섯 살이 던 여름 서로 좋아했다. 너는 도시에 대해서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입술을 포갰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원칙은 벽안에 사는 사람과 벽바깥에 사는 사람은 서로 왕래할 수 없다.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은 그림자를 지녀서는안 된다. 벽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은 그림자를 지녀야 한다. 본체와 그림자가 뒤바뀔 수 있을까?
그림자를 영원히 잃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머리 위에 접시를 얹은 채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
이도시에 머무르려면 그림자는 단념해야 한다. 내의식은 오직 너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도시벽 안쪽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에서 경험한 너와의 교류 그것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기쁨이고 설렘이다. 오래된 꿈 혼돈의 소우주일 뿐 우리의 마음이란 불명료하고 일관성이 결여된다. 나는 너를 두고 벽 바깥의 세계로 나갈 것이다.
나는 바깥세상에서 너를 만난 적이 있다. 너는 그림자라고 말하며 내 그림자는 한참 옛날에 죽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를 간절히 원했다. 일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고 이도시에 오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오게 되었다. 너는 바깥 세상의 네가 아니다. 너는 여기서 꿈을 꾸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헤어짐이 있을 뿐이다.
내의식 깊은 곳에 네가 있다. 그래서 항상 몇 명의 여자를 만났지만 매 범 그르치고 말았다. 마흔 살이 되었다. 독신 열일곱 살 때부터 이십삼 년에 걸쳐 너를 기다렸다. 연로한 부모님은 결혼을 재촉하지만 나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 변함없이 너를 생각한다.
너에게서 받은 편지다발, 손수건 한 장 ,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대해서 면밀하게 기록한 공책, 하지만 너는 없다. 마흔다섯 살 생일이 돌아왔다.
꿈 읽는 이 가 그림자와 다시 한 몸이 되어 도시에서 도망친다. 두 다리가 돌처럼 딱딱해지고 종아리가 덜덜 떨린다. 눈앞에 벽이 우뚝 솟아있다.
그 높고 견고한 도시의 벽이다. 벽은 자유자재로 모양과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벽은 우리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림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말라고 했다. 벽 같은 건 없으며 다만 환영일 뿐이라고 했고 나는 그림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벽을 통과했다.
마치 부드러운 젤리층을 헤쳐 나오는 것처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촉이다.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뭔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줄은 몰랐다. 그림자에게 너 혼자 가라고 말한다. 나는 도시에 남겠다. 도시를 빠져나가면 고독해지고 말건대 나는 그 고독을 견딜 수 없다. 도시에 남아서 꿈을 더 읽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행운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