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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서-정보

내인생에서 가장 분주한 사흘 -아버지의 행방일지

by 달빛도 머무는 웃음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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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이었고, 사회주의 이념과 유물론자였던 아버지,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전봇대에 부딪혔으며 돌아가셨다. 이 책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 곧 아버지의 고생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이라 했다.

 
달빛도 머무는 웃음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딸에게 있어 세상 고해의 바다에서 해방이었다고 본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죽도록 싫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행방일지-작가 정지아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죽도록 싫었다.
이상하다 물끄러미 바라본 영정사진, 아까 보았던 영정사진과 달리 보인다. 

 
빨치산의 아버지는 끝났다. 어릴 적 친밀했던 아버지가 기억이 나고 그립다. 
이렇게 죽음은 끝이 아닌가 보다.기억 속에서 부활되고 용서와 화해도 되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인연 맺은 두 사람이 마지막 아버지 유골을 아무 데나 뿌레    삐리렜대서 곳곳 아버지가 기억할 만한 장소에  뿌리며  함께 해 주었다. 
 

아버지의 18번 "사람이 오죽하면 그것냐 "

이 말을 받아들이니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나의 오만했던 청춘을 부끄러워 하며 반성하며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이 책을 바칩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받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누가봐도 유머일 수 밖애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 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책

지리산은 짙은 운무에 잠겨있었다. 태양이 높아지면 운무 속에 치솟은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새벽 네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이 되기 직전 ,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각, 아버지는 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 


 

한 사내가 가고 없는 노동절 아침, 새벽녘의 지리산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고요히 장엄했다. 일곱시 .지금쯤  고향 반내골에 서는  친척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논밭을 둘러보고 있을 터였다.
 
전화를 해도 무례하지 않을 적정한 시간이 언제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식전 댓바람부터 부고를 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실례인 듯 했다. 
 
여기는 구례, 이곳에서는 때로 전화보다 사람의 말이 빠르다. 새벽부터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그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워치케 아시고 벌써부텀 오셨당가요?" 어머니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엊저녁에 상욱이 벵원차에 실레 가는 것을 봤그만이라."불알친구를 불시에 잃었지만 그의 표정 또한 평소의 아버지 처럼 덤덤했다. 그는 절친한 친구의 영정 앞에 익숙한 동작으로 두번 절을 올렸다. 난 생처음 상주가 되어 나는 그와 맞절을 했다. 


주차장에서 시끌벅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내골사는 사촌 언니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언니들이 아니고는 이렇게 요란할 리 없었다.  한 언니는 반내골 남자와 결혼해 평생 반내골에서 살고, 두언니는 오래 타지에서 살다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래 떨어져 살았어도 사촌 언니 셋은 똑같이 오지랖 넓고 인정이 많았다. 
 
바꿔말하면 끼지 않는 데가 없고 오만 간섭을 다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우리식구와 달리 흥도 많고 번잡했다. 언니들의 울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동생앞날 막은 작은아버지의 죽음이 이리 애틋하다는게 나는 신기했다.
 
사촌들이 대놓고 아버지에게 뭐라 한 적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 하지만, 사촌들과 아버지 사이에는 묘한 장벽이 있었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입만 열면  옳은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언이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유물론자 다운 대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잔디 지사는 무신 지사
꼬실라서 니 펜한 대로 암 디나 뿌레삐레라. 고기밥이 되는동 밭에 거름이 되는동 .기왕지사 뭣이라도 도움이 돼야제."

 
오후 들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 손님들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주로 아버지 지인이었다. 누군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늘어놓고 잠시 애도에 잠길 만하면 새로운 누군가를 맞아야 했다. 눈물조차 고일 새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분주한 사흘이 될 듯 했다. 
 


동식씨는 테이블을 누비고 다니며 나 대신 상주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황사장은 한번씩 빼꼼 머리를 디밀어 상황을 파악하고는 장례비 걱정은 없겠다 싶은지 흡족한 미소를 지은채 사라졌다. 
 
아버지 동지들의 추모제는 삼십분의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조문실에 빙 둘러앉은 전직 빨치산들은 스무명 남짓 되었다.  조문실을 가득 메운 늙은 혁명전사들 주변으로 이상한 결계 같은 게 드리운 듯했다. 내가 조문객이었다 해도 쉽사리 발을 디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접객실까지 흘러나오는 결의에 찬 그들의 말투도 , 통일을 목전에 둔 듯한 흥분도, 나는 불편했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분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는데  , 젊은 세대가 민족의 통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아버지는 분개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현실인걸 어쩌겠어요 ? 있는 현실을 아니라고 우길 셈인가?사회주의자께서?"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화환을 보낸 국회의원과는 어떤관계인가? 정교수인가 강사인가, 이많은 조문갱이 다 네 손님인가, 취조와 다를 바 없는 노빨치산들의  질문 공세를 받느라 나는 식은땀을 흘리리 중이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목숨을 건 그들 역시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출세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나의 출세 역시 중요한 관심사인것이다.
 
아버지도 그랬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을때 , 시답잖은 학술서 한권을 출판했을때, 아버지는 내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사논문과 책을 스무권이나 보내 달라 했을 뿐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 그 책을 동네방네 돌리고 거하게 술턱까지 냈다는 것을 , 뒤에야 어머니에게 들었다. 
 
사회주의자라면 농민 자식, 노동자 자식을 자랑 삼아야 되는것 아닌가, 박사라고 좋아하기는 , 이러니 사회주의가 망했지, 뭐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기재가 조금도 꺾이지 않은 혁명가처럼  지리산을 바로보며 담배를 태우는 아버지를 내심 비아냥 거렸다. 
 


 
상욱씨가 왔다. 아버지는 고상욱 , 그는 김상욱 .

-이어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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