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쓴다
- 저자 - 유시민
- 책소개 -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글을 쓴다. 이것이 내 일이다. 내게 글쓰기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다. 글을 써서 내 생각과 내가 가진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행위 그 자체가 즐겁고 기쁘다. 글쓰기는 그런 면에서 놀이 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이든, 놀이든, 이것이 제대로 의미를 가지려면 내가 쓰는 글이 쓸모가 있어야 한다.
독자가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 글에서 재미를 덧붙여 깨달음이나 감동까지 얻는 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널리 읽히고 책이 많이 팔리면 기쁘다. 쓸모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쓸모와 훌륭함은 다르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쓴 책들 중에도 내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렇지 않은 책 보다 덜 팔렸다.
마찬가지로 쓸모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훌륭함, 존엄, 품격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치이고, 쓸모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타인의 상대적 가치 평가이다. 나는 많이 읽히는 동시에 훌륭한 책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읽고 , 배우고, 느끼고 , 생각하고 써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훌륭한 글쟁이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쓸모 있는 글쟁이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
'먹물'은 읽을거리를 먹고 산다. 그런데 합수부 조사실에는 읽을 것이 없었다. 헌병의 감시를 받으며 벽을 보고 정좌한 채 꼼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녹록지 않은 고역이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출판일을 하던 김학민 선배가 옆방에 있었는데 ,누군가 책을 한 보따리 들고 온 것이다.
그런데 한권을 제외하고 다른 책은 모두 거부되었다. 그 딱 한 권이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 참여해서 만든 , 크고 두꺼운 양장본 「공동번역성서」였다. 범죄자 교화를 위해 그것만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우리 여섯 사람은 「공동번역 성서」를 여섯 꼭지로 분책해 나이순으로 골라 잡았다. 막내였던 내게 처음 온 것은 구약 「시편」이었다. 「출애굽기」와 「신약」,「외경」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나는 「시편」에서 시작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헤매던 시절 생활사를 담은 「신명기」 ,「판관기」 등을 거쳐 맨 마지막에 「출애굽기」를 읽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문학 작품이다. 역사 소설이자 위인전이며 대하 서사시인 동시에 잠언집이다.게다가 곱고 단정한 우리말로 씌어져 있다. 기독교 성서는 그 후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그때만큼 집중해서 읽고 또 읽은 적은 없었다. 이 기간에 아는 어휘가 크게 늘었다.
나는 문학청년이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도 글쓰기가 직업이 되었다. 나는 계엄사 합사부 조사실에서 태어난 글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글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글쓰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자꾸 글을 쓰는 임무를 받게 되자 나도 나름의 훈련법을 개발했다.
글을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나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1부를 다섯 번 넘게 읽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과 황석영선생의 「장길산」도 여러 번 읽었다. 어휘가 풍부하고 문장이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베껴 쓰기 못지않게 어휘를 눌리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훈련법은 작은 수첩을 지니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거나 머리를 스쳐가는 상념들을 붙잡아 메모했다. 나는 운동권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글쓰기로 밥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한 번도 꿈꾸어 본 적이 없었던 글쟁이가 되었으니 ,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달빛도 머무는 웃음
- 그는 늦깍이 중년이 되어서야 나름 자기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본다
- 좋아하는 놀이가 무엇인지 찾았다 -글쓰기다
- 글쓰기 놀이로 일을 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고 밥을 먹는다
- 그가 몹시 시기 나고 질투 난다.
- 그는 크라잉넛 멤버를 부러워했다.
- 나도 글쟁이가 되어서 글쓰기로 놀이를 하고 일을 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고 싶다
- 꿈꾸어도 되지 않은 글쟁이. 그는 꿈꾸어본 적 없는데 글쟁이가 되었다고 생색낸다.
-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